‘혹’이라는 단어는 종종 통역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환자는 머리, 목, 유방, 자궁, 대장 등 다양한 부위에 “혹이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각 부위에서 말하는 ‘혹’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머리에 난 혹과 피부의 혹, 갑상선의 혹, 또는 대장의 혹은 같은 ‘혹’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 실체는 동일하지 않다.

우선, ‘혹’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병적으로 불거져 나온 살덩어리”로 정의된다. 즉, 정상적인 경우라면 없어야 하는 것이 튀어나온 상태를 가리킨다. 이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bump 또는 lump 정도가 될 수 있다. Merriam-Webster 사전은 이 두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bump: “a relatively abrupt convexity or protuberance on a surface” (표면에 비교적 갑작스럽게 불거져 나온 돌기나 융기)

  • lump: “a piece or mass of indefinite size and shape” (크기와 형태가 불확정적인 덩어리나 덩이)

bump는 주로 표면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부분, 예를 들어 머리를 부딪히고 나서 생긴 혹처럼 외상성 돌출을 묘사할 때 쓰인다. 반면 lump는 조금 더 일반적인 덩어리, 즉 만져지는 종괴나 조직의 뭉침을 표현할 때 흔히 사용된다. 두 단어는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쓰임새가 달라질 수 있다.

의료 통역자에게는 일반적으로 register, 즉 발화의 수준을 맞추어 통역하는 것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전문적이지 않은 일상어로 증상을 설명할 때에는 같은 수준의 단어로 통역하고, 의료인이 전문 용어를 사용해 진단을 내릴 때에는 그에 맞추어 전문적인 용어를 선택하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혹’을 상황에 따라 bump 또는 lump로 옮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각 경우에서 ‘혹’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기억해 두는 것은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수준 높은 통역을 제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머리에 난 혹

머리에 난 혹이라고 하면, 대체로 어딘가에 부딪혀 생긴 외상성 부풀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로는 단순히 “혹이 났다”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흔히 bump라는 단어를 쓴다. bump는 “표면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부분”을 뜻하므로,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고 난 뒤 생긴 혹 같은 경우에 잘 맞는다. 좀 더 의학적으로는 hematoma (혈종)라고 하며, 이는 피부나 두피 아래 혈액이 고여 생긴 덩어리를 가리킨다.

유방의 혹

환자가 “유방에 혹이 있다”고 말할 때는 흔히 만져지는 덩어리나 멍울을 지칭한다. 영어로는 보통 breast lump라고 한다. 이 lump는 낭종(breast cyst)일 수도 있고, 섬유선종(fibroadenoma)처럼 비교적 흔한 양성 종양일 수도 있지만, 드물게는 유방암과 관련된 종괴(mass)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의사들은 환자의 유방에 혹이 있는 경우 추가적인 검진이나 검사로 그 정체를 확인하려 한다. 즉, 환자는 단순히 “혹이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그 실체는 다양할 수 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중 낭종을 뜻하는 영어 단어 cyst는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a closed sac having a distinct membrane and developing abnormally in a cavity or structure of the body(막으로 둘러싸인 액체가 찬 작은 주머니 같은 구조)”이다. 한국어로는 흔히 ‘물혹’이라고 번역한다. 환자가 ‘물혹’이라고 특정해 말한다면 통역사가 cyst로 옮기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대장의 혹

대장 내시경 검사 후 용종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혹이 있었다”고 표현하는 환자들도 있다. 이 경우 대장과 관련된 “혹”은 대개 colon polyp (대장 용종)을 가리킨다. polyp은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a growth projecting from a mucous membrane(점막에서 튀어나온 부분)”으로 정의된다. 즉, 액체가 차 있는 cyst와는 형태적 차이가 있다. 대장 용종은 대부분 양성이지만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장암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발견 즉시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난소의 혹과 자궁의 혹

여성 생식기관인 자궁과 난소도 “혹”이라는 표현과 자주 연결된다. 자궁의 혹이라고 하면 양성종양인 자궁근종(uterine fibroid)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난소의 혹은 대체로 흔히 생겼다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물혹(cyst)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난소의 혹은 악성 종양이나 자궁내막종(endometrioma) 등 다양한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 cyst로 번역하는 것은 부정확할 수 있다.

갑상선의 혹

마지막으로 목에 생기는 혹, 특히 갑상선의 혹은 영어로 thyroid nodule이라고 한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서 nodule은 “a small mass of rounded or irregular shape(둥글거나 불규칙한 모양을 한 작은 덩어리)”로 정의된다. 갑상선 결절은 대개 양성이지만 일부는 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정기적인 검사와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다만 환자가 “목에 혹이 있다”고 말할 때는 갑상선 결절일 수도 있지만 림프절 부종이나 다른 원인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성급하게 nodule로 단정하기보다는 맥락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맺는말

한국어의 ‘혹’은 매우 다양한 맥락에서 쓰이는 단어지만, 영어에서는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표현으로 옮겨야 한다. lump, bump, cyst, polyp, nodule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형태적·의학적 의미에서 조금씩 다른 대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이미지처럼 기억해 두면 통역 과정에서 도움이 된다. 같은 ‘혹’이라도 단순한 물혹에서 악성 종양까지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급하게 특정 단어를 선택하면 정확한 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의료 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작업을 넘어, 배경지식과 개념을 함께 다루는 일이다. ‘혹’이라는 단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세부적인 용어 차이를 꾸준히 공부하고 기억해 두는 것은 통역자가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서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다리가 되도록 돕는 중요한 과정이다.

참고문헌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470242/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diseases/15691-breast-cysts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diseases/15370-colon-polyps

https://advancedgynecology.com/blog/the-difference-between-ovarian-cysts-and-fibroids

https://www.mayoclinic.org/diseases-conditions/ovarian-cysts/symptoms-causes/syc-20353405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5024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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